민중 속 자생한 제주불교의 생명력, '무불의 땅' 용어 지양해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6-10-31 21:27 조회1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앵커멘트]
고려와 조선시대 제주에서 집집마다 등을 내걸던 '관등' 풍속, 오늘날 연등축제의 뿌리를 찾는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학계에서는 제주 관등이 단순한 불교 의례를 넘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린 생활문화였다고 짚었습니다.
BBS제주 이병철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제주불교연합회가 '고려에서 조선시대 제주 관등문화의 복원과 현대적 계승'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제주불교연합회장 허운 스님과 탐라성보문화원 이사장 관행 스님, 전 탐라성보문화원 이사장 탄해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참석했습니다.
[허운 스님/제주불교연합회장]"오늘 이후 이어질 발표와 종합토론이 제주 관등문화의 복원과 현대적 계승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발표에 나선 배상현 창원대 교수는 제주 법화사의 불교 의례와 관등 풍속이 사찰의 쇠퇴와 조선의 억불 정책 속에서도 민간의 세시풍속, 신앙과 결합해 마을의 생활문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상현/창원대 교수]"제주 관등은 불교 신앙의 지역적 변용뿐 아니라 사원과 촌락, 종교 의례와 민간 생활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한 공동체 문화의 한 양상으로도 주목해 볼 수 있다.“

김진숙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연구원은 제주 사찰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속이나 한적한 곳이 아닌 포구와 하천가 등 주민의 실생활과 가까운 곳에 집중 분포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또 제주의 동·서자복은 사찰과 연계된 불교적 존상에서 출발해 민중의 미륵신앙으로 정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진숙/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자복이나 미륵 같은 수호 역할을 했던 존재들이 있었고, 제주 사찰은 산속에서 수행하며 마을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 늘 함께했던 게 제주 사찰이었습니다.“
김 연구원은 따라서 사찰 건물 등 외형적 상실만을 근거로 제주를 '무불의 땅'이라 단정하는 용어 사용은 지양해야 하며, 민중 속에서 자생한 불교의 생명력과 신앙의 실체를 세밀하게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BBS뉴스 이병철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